지금, 여기에 이어지는 고리들에 대하여
1.
“《현재전시》는 작품과 전시를 둘러싼 요소들의 순서를 뒤바꾸어 말과 글만으로 작업이 가능한지 혹은 전시가 가능한지를 실험해보려 합니다. 전시를 둘러싼 많은 인쇄물들이 제작됩니다. 그렇다면 인쇄물 한 권이 전시에 대응하고 나아가 그것을 대체할 때, 작품과 전시라는 사건은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서술 이후에 발생하는 '작품'과 '전시'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묻습니다.”
작년에 시작한 《현재전시》프로젝트로 두 번의 전시를 열었다. 한 번은 책으로, 한 번은 전시장에서의 전시로. 위 단락은 필자가 책으로 연 《현재전시 #01》의 첫 장에 쓴 글이다. 이어서 이 도록의 전시 개요를 읽으면 1960년대의 개념미술, 특히 세스 시겔롭Seth Siegelaub의 《제록스 북Xerox Book》(1968)이나 《1969년 1월 5일-31일January 5–31, 1969》(1969), 또는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의 『진술들Statements』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시 형태 실험으로 미술을 새로이 정의하려는 시도, 문자와 언어에 근거를 둔 인쇄물이 주요하고 유일한 전시 현장이라는 점, 팸플렛이나 책이라는 출판물을 배포하는 것으로 기존 전시(작품)의 원본성과 일시성을 흔든 것 등. 과정과 결과물의 형식을 보면 《현재전시 #01》은 50년 전의 시도와 유사해 보인다.
2.
그러나 필자가 이 프로젝트에서 살피려는 것은 모월 모일부터 모일까지 모처에 갇혀 있는 전시의 바깥 자리였다. 아직 실체가 없더라도 작가의 사유와 행위로 전개 중인 작품, 오픈하기 몇 달 전에 기대효과까지 이미 다 서술되어버린 전시, 작품을 내보인 후에도 여전히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아티스트 토크, 폐막 후 몇 단락으로 그 전시가 이렇게 저렇게 있었다는 인증서가 되는 리뷰, 비평, 도록. 최초의 영감과 창발에서 완결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이어지는 순간. 과정. 생각. 이미지. 눈에 띄는 사건이 아니어서 명명할 수 없었던 시간을 더듬고, 특정할 수 없는 계기를 표면 위로 불러오고자 했다.
이에 더해, 전시에 '대'한 말과 글이 “실제 전시와는 다른 시간에, 너무 이르거나 늦게, 그리고 전시와는 무관한 장소에 존재”하는 상황을 뾰족하게 보고 싶었다. 작업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말해지고 글에 기대해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작가들마저 자신의 창작품을 언어로 설득해야만 한다면, 이것을 거쳐 가야만 하는 지겨운 절차가 아니라 작품 자체로서 발화하는 매체로 사용해보고자 했다. 참여작가 각자가 주로 쓰는 재료나 방법론을 출발점으로 삼되, 그것이 가지는 제한점들을 넘어서 보길 바랐다. 물리적, 시간적 한계나 비용의 제약 없이 완성된 작품을 기대했다.
현실 세계에서 여는 전시를 처음부터 예정하지는 않았다. 《현재전시 #01》이 지면 위에 펼쳐진 것으로 전시가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금해졌다. 문자를 빌려 표현된 작가의 조형성이 물리적 옷을 입는다면 어떻게 표현될지. 한 권의 책/전시를 읽으며 피어올랐던 무언가를 어떻게 감각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다만, 기획자로서 필자는 그것이 재현이나 정확한 구현은 아니길 바랐다. 앞서 완결된 글작품을 참조하여 작가가 다루는 언어와 시각 언어의 관계를 새로이 보여주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을 《현재전시: Speaking Text》에서 보여주자고 참여작가에게 제안했다.
3.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참여를 확정한 작가는 김수연이었다. 김수연은 꾸준히 옛날이야기, 지나간 일들, 사라진 것들에 관심을 가져왔다. 백과사전, 도감에서 고른 대상을 출력하거나 사진으로 수집하고, 이것을 자르고 붙여 오브제로 재구성한다. 이 오브제를 사진으로 촬영한 뒤, 사진을 보고 그린다. 종이에서 사진으로, 다시 캔버스로 향하는 납작한 이동 사이에 부피와 그림자가 끼어든다. 최종적인 회화에서 짐작하기 어려운 평면과 입체의 상호 참조 과정을 《현재전시》에서 보이고자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김수연은 《현재전시》라는 “다가올 미래를 현재라고 정의내리고 작업”했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의 작업 일지를 쓰고, 일지에 쓴 작업을 실제로 제작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선형적 흐름을 깨고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며 쓰였다. 자연스레 사실, 상상, 바람, 추측, 거짓말이 뒤섞였다. 역행하고 역전되는 타임라인에서 작업 일지와 작품은 주역과 보조의 역할을 주고받는다. 예컨대, 《현재전시: Speaking Text》에서 일지와 함께 선보인 작품 중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묘비 (내가 살아 있을 때 결코 볼 수 없는 것)〉은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한 회화와 설치 시리즈 〈Love & Death〉에 속하는 작업으로, 지인들이 스스로 정한 희망 데드라인에 맞춰 이름과 생몰 연도를 적은 페이크 묘비다. 묘비 주인의 사망 연도는 그가 여생에 하려는 일들, 필요한 시간에 생에의 욕심까지 더해 추산되었을 것이다. 죽음은 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오고 묘비는 죽은 자의 지난 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지만, 김수연의 작업에서 죽음과 묘비는 역설적으로 계획과 소망을 말한다. 지나간 - 실은 지나갈 - 시간을 몇 발 앞선 기록이 구상과 실현을 접붙이고 시작과 끝을 겹쳐놓는다.
4.
김수연이 작업과 결부된 시간의 흐름을 여러 방향으로 갈라놓았다면, 이희인은 흐르는(정확히 말하면 흐른다고 생각되)는 시간의 구조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는 〈내일의 어제, N.〉에서 시나리오, 스크립트, 편집 과정, 영상 작품의 장면을 병치하고 제작자 자신과 캐릭터 N을 중첩시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내일의 어제, N.〉의 주인공 N은 작가의 자전적 인물이다. 그는 오늘이 어디쯤인지 모를 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을 내일의 어제라고 씀으로써, 어제와 같은 오늘의 모습으로 내일도 별다르지 않게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집 구석 화분에 박혀 변함없는 배경으로 머무는 식물처럼 말이다. N은 〈보다〉를 (재)편집하며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시간은 프레임 개수와 클립의 길이로 대변되는 주인공 보다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N이 살면서 지나친 시간이기도 하다. 어제 줄었다가 오늘 도로 늘어나는 보다의 시간 조각처럼, N은 되풀이되는 현재에 정체되고, 고립되고, 짓눌려 있다.
〈내일의 어제, N.〉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N은 〈이대로 괜찮을까?〉에서도 과거로 내려가 자신의 현재를 묻는다. 지금의 자기 존재를 만든 뿌리라 할 수 있을 과거, 그리고 그 시간 속의 가족에게 간다. 엄마, 엄마의 엄마, 할아버지, 아버지. N은 가족과 연관된 장소에 기억하고 싶은 대상을 배치하는 기억술(記憶術)의 방식으로 뿌리를 본다. 자기의 발생을 본다. 바라봄의 끝에 선 N이 뚜렷한 답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구토』에서 로캉탱이 마로니에 나무뿌리를 보며 존재에 관해서는 그 무엇도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듯이, N은 어린 시절의 가족과 기억을 노트에 적어두고 현재로 돌아온다. 찰리 채플린의 입을 빌려 “우린 잘 될 거예요”라고 읊조리면서.
〈이대로 괜찮을까?〉 말미에 작가의, 그러니까 N의 엄마가 N에게 이르는 당부가 자막으로 뜬다. “그래. 생각하던 거 잘 하고.” 그의 엄마는 작가의 작업을 생각하는 작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현재전시》에서 이희인은 지면과 화면을 결합하여 작업의 생각을 섬세히 드러낸 셈이다.
5.
두이는 평소 시간과 일루전을 주제로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설치작업을 해왔다. 두이가 쓰는 이야기들은 그것이 놓인 전시 공간에 녹아든다. 반대로 전시 공간이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전시장에서 작가가 쓴 이야기를 읽는 관객은 자신이 전시장과 이야기 속 공간이 맞닿은 모서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현재전시: Speaking Text》 에서는 이 방식이 훨씬 은유적으로 제시되었다.
이희인이 자신의 이전 작품 〈보다〉를 신작의 전면에 삽입했다면, 두이는 2017년의 설치 작품 〈Read Me〉(2017)의 공간을 신작으로 인도하는 입구로서 빌려온다. 두이는 《현재전시 #01》에서 글로 〈여름밤〉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다. 〈여름밤〉 속 화자는 〈Read Me〉가 전시되었던 작은 분홍색 방에 있다가 건축물이자 그 자체로 전시인 여름밤으로 걸어 들어간다. 환상과도 같은 일들을 겪고 난 화자가 여름밤의 출구를 나오면, 전시는 한여름 밤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현재전시: Speaking Text》 전시장에는 사진이나 사물로 전환된 〈여름밤〉의 장면들이 놓였다. 바다, 유리창, 빛, 반짝임, 의자, 꿈, 액자, 책. 모티프이자 오브제로서 포착된 장면은 둘 셋 짝을 지어 〈여름밤〉에 등장하는 사건과 유사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다거나, 액자에 담긴 바다의 반짝임을 따라가는 등의 〈여름밤〉을 움직이는 풍경들. 두이는 “하나뿐인 출구로 나오면 다시는 여름밤을 볼 수 없”도록 출입문을 지웠지만, 그 세계의 단서만으로 이곳에 환영을 되살린다. 이 환영의 일부가 되어 잠시 꿈을 꿔보라고 말을 건다.
6.
강지윤의 〈년도미상〉에는 마치 실재하는 조각을 설명하는 듯한 “슬며시 기울어져 있어”, “미세한 기울기로”, “비틀린 채 서로 간의 균형으로 버티고 있는”, “나란하지 않게 허공에 겹쳐 매달린” 따위의 정도를 나타내거나 크기를 가늠하거나 위치를 가리키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보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정도로 상상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가 미세한 걸까? 얼마큼 어느 방향으로 비틀어져 있는 걸까? 나란하지 않다는 건 마주 보고 있다는 걸까, 어긋나게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걸까?
작가는 정당한 이유와 기준을 가지면서도 변칙적으로 이들 묘사를 전시장에 기입했다. 글 작품과 전시장 작품이 서로 조금씩 참조하도록 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갖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년도미상〉에서 주인공 그가 만들어낸 “기울어진 벽의 형태로 쌓아올린 기울어진 표준 규격(230*114*66)의 덩어리들”만큼은 〈바르게 쌓기〉가 되어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전시장에 세워졌다. 한편 “시간이 지나자 점차 몇몇의 형상들이 그의 주변을 에워싸는” 순간은 바닥에 붙인 접착제에 더러움이 묻을수록 또렷해지는 〈흐릿하지만 선명하게도〉의 문장으로 시각화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정한 틀을 벗어나며 자라나는 구조물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떨어지는 물방울로 인해 점점 부풀고 뒤틀리는 〈습관적인 일〉의 종이뭉치로 형상화되었다.
이렇게 설치된 작품들은 모종의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밟고 있는지도 몰랐던 바닥에 눌어붙은 접착제가 걸음을 떼는 순간 신발 바닥에서 떨어져 나가며 쩌-억 소리를 낼 때, 가지런히 쌓인 벽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기우뚱하며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을 때, 콩알만 한 “우리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문장을 가만 읽자니, 그 고요한 순간을 비집고 물방울이 툭 떨어질 때. 작품 곁에 있는 내내 아슬아슬한 무언가, 단번에 감지되지 않는 의외성이 따라다닌다. 미세하지만 끝내 정체를 드러내고야 마는 지점들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비록 〈년도미상〉의 그는 내재된 불안감은 상습적인 것이라서 드러나질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7.
안부는 말이나 글로밖에 할 수 없는 존재 묻기의 방식으로 《현재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만나게해주쇼 [아빠편]〉은 아빠를 나의 아빠가 아닌 독립된 객체 $그$로 바라보고, 처음 만나는 타인을 알아가듯 아빠에 대한 정보를 탐색해나가는 작업이다. 작가는 리서치 형태의 설문/지에서 시작하여 이미지, 영상, 사진으로 존재 묻기를 다각화한다.
먼저 안부는 자기 작업의 이유와 의미를 서술하고, 아빠에 관해 묻는 약 100개에 달하는 문항을 작성했다. 한 인간 존재를 알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두툼한 문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작가 자신이 만든 설문지이지만, 자신이 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그렇게 완성한 설문지에 작가가 스스로 답을 적고, 아빠에게 이 설문지를 건네 오답 체크를 받았다. 작가는 정답을 확인하는 과정을 영상 작품 〈그:대화〉에 담았는데, 이 영상에는 두 부자 사이의 거리감, 어색함,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뼘 아래로 가까워지지 않는 부자의 어깨 사이의 거리,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 서로를 힐끗 보는 어긋난 시선, 습관대로 버럭할 뻔했던 감정을 누르는 잔숨들에서 아들과 아버지라는 어려운 관계가 감지된다. 작가가 〈만나게해주쇼 [아빠편]〉의 서두에 담담히 밝히는 작업 실행의 이유가 전해지는 대목이다.
안부는 《현재전시: Speaking Text》에서 일차적으로 직접 작성한 설문지와 영상을 제시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그(아빠)에 대한 정보를 수집·전달하고, 소통을 시도한다. 더욱이 이 과정을 자기 혼자만의 시도와 만족으로 남기지 않고 다른 이들도 참여하게 함으로써 작업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를테면, 그(아빠)가 아빠가 아닌 오롯한 $그$였던 젊을 적 사진을 진열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설문지를 작성한 작가 지인의 설문지도 액자로 걸었다. 전시장을 찾아오는 관람객에게는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그래픽 이미지로 제작한 설문지를 건네 직접 그의 존재 묻기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안부는 본래 본인의 감정에서 출발해 사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고찰을 사진으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현재전시》에서는 압축적일 수밖에 없는 사진을 잠시 내려두고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른 참여작가들과 달리 픽션을 배제했고, 글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전달력, 설득력, 그리고 읽고 쓰는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발생하는 집중과 참여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아빠로 대변되는 가깝고도 먼 관계에 다가서 소통을 시도했다.
8.
《현재전시》는 작가의 작업의 과정과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의 현재와 맞닿아 있는 여러 주체의 글에도 주목한다. 기획자, 비평가, 기자, 혹은 드러나지 않지만 전시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사람들의 몫을 생각한다. 그들이 전시와 외따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는 경우라면 작품과 함께 비평문을 싣거나, 해당 글을 책 안팎으로 같이 묶음으로써 구성적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여타 작품집이나 도록과 다르지 않은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유일하고 명백한 해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전시》는 기존 미술 관련 간행물에서 싣지 않았던 예술 주체의 글을 책에 싣고, 프로젝트가 한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리뷰나 비평을 받고 있다. 《현재전시 #01》에 수록된 백진의 작품 비평, 《현재전시 #01》에 대한 김민관의 메타 비평 그리고 《현재전시: Speaking Text》와 앞선 비평을 아우르는 이인복의 메타 비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현재전시 #02》에 일부 선보일 테지만, 전시의 구성·개최·유지에 관여하는 주체들도 프로젝트 참여한다.
앞선 비평가들이 글과 작품, 출판과 전시의 순환구조에 대해서 $무한궤도, 릴레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비유로 지적한 바 있는데, 이 구조 속에서 놓인 수많은 고리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김민관이 지적하듯, 이 프로젝트는 전시의 외부를 상정하면서 “출판의 외부를 상정한다, 다음 전시로써 그리고 메타 비평으로써. 이렇게 전시와 출판의 위상을 재고하며 구조를 쌓아가는 과정은, 전시/출판의 다른 층위들, 끝없이 릴레이 되는 전시-출판의 연속선상을 만들어 간다.” 《현재전시》는 예술을 선별된 기록에 맡기지 않고 $지금 여기$로 끄집어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