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전시》는 작품과 전시를 둘러싼 요소들의 순서를 뒤바꾸어 말과 글만으로 작업이 가능한지 혹은 전시가 가능한지 실험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강지윤, 두이, 이희인이 작가로, 강지윤과 임나래가 기획으로, 백진이 비평으로 참여해 《현재전시 #01》을 만들었다. 설치, 사진, 글, 영상 작업을 해오던 세 작가는 자신의 전작들을 참조해 글만으로 어떤 작품을 창작했다. 《현재전시 #02》는 신지언, 김수연, 안부, 전영진, 장성진, 이종민이 함께한다. 본래 글이나 문자를 작업의 재료로 능숙하게 다루어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현재전시》는 작품을 만들든 전시를 보여주든, 그 행위의 물리적 제약을 없애고 시각작가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오로지 글에 중심을 둔다. 전시의 자리에 아예 글 덩어리들을 가져다 놓는다. 글과 작품 사이에 접속어를 떼어 버린다. 그렇기에, 참여작가들은 이전과는 다소 다른 태도로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고, 글작품을 썼을 것이다. 아래에 이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지언은 자신의 과거와 무의식 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이 세계를 회화, 설치, 글로 풀어왔다. 누군가는 공상이라 할법한 이 세계는 작가 자신에게조차 의문이자 답인 채로 여전히 구축되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로 2018년 3월에 발표한 《무위無爲를 위하여》를 들 수 있는데, 이 역설적인 제목의 이 작품은 무엇인가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기념의 땅, 허허로운 말이 떠도는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입구에서 사라진 여자〉는 《무위無爲를 위하여》 중 마지막 단편 〈소발화〉에 잠시 풍문처럼 등장했던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깊이를 고민하다 자살한 작가의 종적을 좇다 손끝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자는 이렇다 할 원인도 치료법도 찾지 못했지만, 공허라는 병명만은 확인했다. 이처럼 신지언은 무위, 사라짐, 공허 등 없음의 다양한 양상을 신체적 증상과 정서적 징후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글에 종종 나타나는 취소선처럼 없음은 없어진 무언가가 있다는 흔적을 남긴다. 지금 있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말이다.
김수연은 옛날이야기, 지나간 일들, 사라진 것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백과사전, 도감에서 고른 대상을 출력하거나 사진으로 수집하고, 이것을 자르고 붙여 오브제로 재구성한다. 이 오브제를 사진으로 촬영한 뒤, 사진을 보고 그린다. 종이에서 사진으로, 다시 캔버스로 향하는 납작한 이동 사이에 부피와 그림자가 끼어든다. 최종적인 회화에서 짐작하기 어려운 평면과 입체의 상호 참조 과정을 《현재전시》에서 보이고자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김수연은 《현재전시》라는 “다가올 미래를 현재라고 정의내리고 작업”했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의 작업 일지를 먼저 쓰고, 일지에 쓴 작업을 이어서 제작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선형적 흐름을 깨고 과거-현재-미래를 오가며 쓰였다. 자연스레 사실, 상상, 바람, 추측, 거짓말이 뒤섞였다. 역행하고 역전되는 타임라인에서 작업 일지와 작품은 주역과 보조의 역할을 주고받는다. 일지가 쓰인 지 6개월이 지났고, 6개월 치 기록이 남았다. 실현된 것과 실현될 것,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글자로만 남은 상상과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어떻게 교차하며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안부는 본래 본인의 감정에서 출발해 사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고찰을 사진으로 표현해왔다. 그러나 《현재전시》에서는 압축적일 수밖에 없는 사진을 잠시 내려두고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다른 참여작가들과 달리 픽션을 배제했고, 글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전달력, 설득력, 그리고 읽고 쓰는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발생하는 집중과 참여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아빠로 대변되는 가깝고도 먼 관계에 다가서 소통을 시도했다. 이런 맥락에서 안부는 말이나 글로밖에 할 수 없는 존재 묻기의 방식으로 《현재전시》에 참여했다. 그의 〈만나게해주쇼 [아빠편]〉은 아빠를 나의 아빠가 아닌 독립된 객체로 바라보고, 처음 만나는 타인을 알아가듯 아빠에 대한 정보를 탐색해나가는 작업이다. 먼저 안부는 자기 작업의 이유와 의미를 서술하고, 아빠에 관해 묻는 약 100개에 달하는 문항을 작성했다. 한 인간 존재를 알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두툼한 문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작가 자신이 만든 설문지이지만, 자신이 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설문지에 확신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때로는 망설이며 밑줄을 긋고, 여기저기 빈칸을 남기며 스스로 답을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이 설문지를 건네 오답 체크를 받았다. 아들의 자문자답에 더해진 아빠의 첨언은, 그대로 그의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전영진은 서구 모더니즘 비평이론을 기저에 깔고 회화의 평면성, 순수성, 본질을 탐구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그의 그림은 아크릴 물감을 층층이 쌓고 지우기를 반복해 어떤 형태를 완성하는 〈Clear Lines in Abstraction〉 연작(2008~ ), Art, Canvas, Painting, Colors, Illusion 등 작품의 질료나 정체성,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The Canvas Play〉 연작(2000~ ), 면과 색이 정연하게 나뉘어 흡사 조각을 연상시키는 풍경화 〈Painting for painting〉 연작(2014~ )으로 나뉜다. 《현재전시》의 〈Artwork of Work of Art〉에서 전영진은 지금까지 그려온 세 시리즈를 추상Abstraction, 개념적Conceptual, 추상 풍경Abstract Landscape에 조응시켜 축약하고, 이들 작품과 생산자인 작가, 감상자의 상호 관계를 독백으로 풀어낸다. 독백의 실질적 화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다. 그림/들이 자신을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을 설명하는 다른 말들을 설명한다. 본체인 그림과 무관하게 세상을 떠도는 말들, 그러나 결국 어떤 형태로든 본체로 돌아와 칭찬이거나 공격이 되는 말들. 그렇게 본체를 변화시키고야 마는 말들. 화자는 이 많은 말들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나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회화 안에서 현실, 진리, 유대, 변화를 거쳐 좋은 것이 되는 도정에서 비로소 그 자유를 획득하기를 원한다. 〈Artwork of Work of Art〉의 독백은 결국 작가가 캔버스를 마주하며 자신의 작품과 나누는 대화이자 성찰이다.
장성진은 개인의 삶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시대성을 드러내거나, 반대로 사회의 구조를 더듬어 그 안에 있는 개인의 서사를 그리는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를 해왔다. 《현재전시》에 발표한 오페라 〈죽은(4) 시장의 사회〉 역시 유사한 주제로, 관악구 조원동 소재의 신림중앙시장에서 생계를 꾸리는 상인들의 이야기이다. 4차원 초입방체를 닮아 상하좌우가 구별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무대 배경, 희망과 걱정과 한탄을 한 입에서 말하는 노파를 통해 다소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현실적 모티브를 꽤 자세히 밝히기도 했다.) 지어진 지 40년, 이제는 죽은 시장에도 호시절은 있었다. 1970~80년대 정부 주도의 공단 건설과 산업 개발을 배경으로 상인들은 성공을 꿈꿨고, 2000년대에는 재개발을 발판 삼아 재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꿈과 희망은 근대화 또는 산업화라는 미명이 흩뿌리는 신기루였을까. 이야기 속 신발가게 노파의 혼란, 근심, 걱정이 암시하듯, 그리고 근대의 기둥의 설레발이 시사하듯, 우리는 극 중 1979년과 2006년을 지난 후 현재의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과 부정적 현실을 짐작하게 된다. 《현재전시》 지면에 실린 이야기는 〈죽은(4) 시장의 사회〉 3막 중 1막에 불과하다. 죽은 시장은 계속해서 죽음을 향해갈지, 혹은 근대적 믿음(을 빙자한 환상)에 죽음을 고할지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현재전시 #02》의 지킴이를 자처한 이종민의 글이다. 이종민은 동선과 행동을 제약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관람객의 의식을 가로막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지킴이의 시선을 《현재전시》에 투사한다. 전시/장에 일부러 찾아오는 관람객이나 전시를 만든 작가나 기획자보다 더 오랜 시간 가까이서 전시/장을 지켜보는 지킴이처럼, 이종민의 시선은 이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 옆에 붙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자기 몫을 지켜낸다. 그런데 작품과 캡션 주변 비어 있는 전시 공간 어디쯤 붙박인 지킴이가 지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관람객-작품-지킴이 사이의 관조를 넘어선 응시, 그리고 바라봄의 주체와 객체의 전도, 이 모든 것이 자아내는 긴장감이야말로 지킴이가 전시에서 지키고 있는 실체가 아닐까.
예술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말들이 되려 예술을 부족하거나 과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작품에 대한 글은 때로 작품보다 먼저 태어나거나 오래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과 언어가 그렇게 밀접한 관계라면, 양자 관계를 넘어선 어떤 합일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전시》는 그 지점을 더듬는 실험이자 탐구로서 이 전시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