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변화하는 시대상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난 몇십 년간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사용되어 온 맥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용어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흐름에 눈에 띄는 변곡점이 있다면 그것이 점점 부정적인 함의를 띤 방향으로 이동해왔다는 것이다. 분명 1990년대의 X세대, N세대가 지칭하는 청년과 지금의 칠포세대가 지칭하는 청년은 다른 사회를 살고 있다.
삼포(三抛)-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오포(五抛)-삼포는 물론 집과 경력을 포기하고, 칠포(七抛)-오포에 더해 희망, 취미,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도대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혹자는 이렇게 답한다. 헬조선Hell朝鮮. 지옥 같은 부조리한 한국, 백 년 전으로 퇴보한 현실이라고. ‘헬조선’이라는 말은 2010년부터 쓰인 신조어로, 이제는 그 뜻을 구구히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흔히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아니, 알고 사용한다기보다 헬조선 자체를 하루하루 겪으며 살아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형과 조윤기가 이룬 팀 4442가 기획한 < 헬조선 만들기 >는 오늘날 자신이 그리고 동시대 청년이 살아가는 헬조선을 말하는 프로젝트다. 헬조선 담론을 분석하고 유머러스하게 발화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가진 무게를 흩고 다양한 경로로 그 문제의 실체에 다가선다.
4442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경계했던 문제는 헬조선 담론에 파묻혀서 푸념이나 불평에만 머무르는 것, 그러다가 결국 현실적인 문제의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피하고자 ‘희화화’와 ‘패러디’의 전략을 택했다. 4442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보이는 민족주의적 사관이 헬조선의 한 축을 이룬다고 생각하고, < 헬조선 만들기 >를 구성하기 위한 큰 얼개를 『환단고기』에서 가져왔다. 내용은 헬조선 담론에 등장하는 유행어나 지금의 사회구조를 보여주는 징후들, 이런 개념에서 파생된 키워드를 조사하여 고른 주제어들로 구성했다.
2016년 2월에 기획을 시작해 오랜 시간 리서치와 워크숍을 통해 구체화된 작업은 총 일곱 점이다. 환단고기를 미러링 하여 서술한 고대국가 헬조선 역사서 < 헬단고기 >, 헬조선의 벌레와 현대사회의 혐오 현상을 삽화로 환기하는 < 직하 바이러스 >, 헬조선의 전통음식 ‘괴보린’을 통해 성과주의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 게보린의 길 >, 헬조선의 전통무용인 ‘두둠짓’ 삽화를 통해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에 대해 조소를 보내는 < 두둠짓 >, 헬조선 담론에 대한 SNS데이터 의미망 지도와 서울의 지형도를 겹침으로써 헬조선 담론을 시각화한 < 헬조선 지형도 >, 에어볼 추첨기 형상의 헬조선 악기로 불확실성에 기대는 자본주의의 비이성적 측면을 꼬집은 < 지옥의 소나타 >, 위령식으로 헬조선 선조들을 기리는 동시에 헬조선을 살아가는 후손들을 보며 통탄할 선조들의 목소리를 불러들이는 < 영혼의 가라오케 >. 『환단고기』의 서술방식을 차용한 상기 작업은 헬조선을 우스꽝스러운 고대국가로 재건축한다. 이 모두는 어디까지나 가상이며 허위이지만, 관객은 정교한 만큼 농도 짙은 가상 국가 속에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발견한다. 헬조선의 백성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헬조선의 백성인 자신을 애도하는 것에 그치고 돌아서야 할까?
4442는 “지옥이란 해결하거나 물리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헬조선이 육체를 얻고 이 땅 위에 현현하는 것은 우리가 마주한 지옥 같은 현실이 영원불변의 고통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일일는지 모른다”면서도, 헬조선이 사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였음을 고백할 때, “헬조선은 더는 극복불능의 실재가 아닌 우리가 점유할 수 있는 관념상의 실체”가 되고 비로소 사악한 현실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 헬조선 만들기 >는 우리를 짓누르는 헬조선을 향해 화살을 고쳐 들기 위한 표적을 만드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 헬조선 만들기 > 프로젝트는 이 표적을 인식한 이들과 연대를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전시장 안에 마련된 < 연대식탁 >에서 헬조선을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헬조선이 무너진 자리를 대신할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답을 나눈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뒤섞이며 새로운 담론이 태어날 밑거름을 만든다. 뒤늦게 밝히자면, 팀 이름 4442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한다고 한다. 4442의 멤버 김태형과 조윤기 작가가 평소 사람 사이의 중첩된 공간,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 공동체의 확장과 참여적 연대를 지향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4442는 < 연대식탁 >과 같은 헬조선 네트워크를 지속하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4442의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 소액多컴 > 자유발표 날에 4442가 청중과 함께 외치길 권했던 건배사를 이들에게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응원을 대신한다. Che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