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Memori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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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多컴 2016 선정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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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떼! やめて!〉 
맹선아, 박선미,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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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0 ~ 1. 15.
서교예술실험센터

맹선아, 박선미, 이윤경은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며 느낀 모순된 사회시스템을 이야기한다. ‘야메떼!やめて!’가 성인비디오에서 여성의 입을 통해 나올 때는 “싫어, 그만해”를 의미하지만 남성의 귀에는 “좋아, 계속해”라고 인식되듯이, 불합리하고 부당한 문제가 상주하지만 겉으로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드러낸다. 세 작가는 특히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미소지니(Misigyny, 여성혐오증)의 면면에 주목한다.

이들의 직종과 직업은 다르지만, 세 사람이 속한 작은 단위의 사회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매우 비슷했다. ‘어린 신임 여성 부하 직원’에게 기대되는 바로 그것 말이다. 사회구성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수식어는, 말 그대로 ‘설명’이 아니라 ‘규정’이기에, 누군가를 대변할 수 있는 특징을 가능한 간결한 단어를 취한다. 세세한 풀이는 탈락하고 어린, 신임, 여성, 부하, 직원이라는 단어처럼 마치 객관적으로 보이는 듯한 표현들이 선택된다. 이 단어들은 따로 떼어져 하나씩 쓰이기도 하고, 두세 개를 붙여 쓰이기도 할 것이다. 어린 여성이라든지, 부하 직원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조합에 따른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서 한 개체를 가리키던 수식어가 이제 아주 많은 사람을 포섭하게 된다. 최초에 갈라졌던 성, 나이, 신분의 구별이 희미해진다. 세 작가의 이야기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고 관심과 공감을 끌어내는 과정도 이와 같다. 만약 관객이 어린/신임/여성/부하/직원 중 한 단어라도 자신과 엮을 수 있다면, 그는 작가가 대신 보여주는 자신의 경험을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사진, 영상, 텍스트, 조형물 등 일곱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대개 여성혐오와 관련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하지만, 직설적으로 그 텍스트를 가져다 쓰는 경우부터 몇 겹의 은유를 덧대어 완성한 경우까지 다양한 방법과 형식을 취했다. 전자에 해당하는 < 낱말카드 >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속에 잠복해 있는 여성혐오에 주목한다. 사전, 커뮤니티, SNS 등에서 무작위로 수집하고, 수집된 단어의 사전적 설명 그리고 그 단어가 일상에서 어떻게 변질한 의미로 쓰이는지 예문을 함께 제시한다. 벽에 걸린 총 50개의 낱말 카드는 데이트 폭력, 빨대(꽂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처럼 젠더권력을 직접 드러내는 단어 외에 머리카락, 바지, 치마 등 사물을 지칭하는 객관적인 단어의 이면에도 어떤 사회적 인식이 달라붙어 있음을 보여준다.

< Mr. K >는 포르노그래피의 도착적인 이미지 프레임을 여체가 아닌 남성의 신체에 적용한 사진 시리즈이다. 작가들은 자신의 성적 판타지에 따라 남성 모델을 촬영했지만, 실은 자신들의 판타지 자체가 기존에 여성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학습된 결과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대상을 소비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남성을 대상화해보려 한 시도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의문을 남긴다. < In her office >는 이윤경 작가가 직장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그대로 옮겨온 설치작품이다. 전화기, 메모장, 클립, 커피, 식물 등 사용 목적이 뚜렷한 물건들은 사무실이라는 위계적 공간에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물건들을 주로 사용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에둘러 갈 것 없이 곧 막내 직급 여직원의 책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녀의 책상과 사무용품이 비단 말단 여직원의 사회생활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리라. 우리 사회 속의 누구든지 이 사무실의 피고용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 야메떼! やめて! >가 문제시하는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여성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적용되고 있는, 그리고 적용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맹선아, 박선미, 이윤경 세 작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면서 그 안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래야 하고 저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답을 끼워놓지 않는다. 자신들과 동일한 자리에 서서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미소지니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관객 스스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갖가지 규정된 틀에 질문을 던질 상황을 풀어놓는다. 인터뷰에서 한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에 덧씌워지는 이미지가 분명히 있다. 각자 느끼는 부분은 분명 다르지만, 사회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직접적인 내 경험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다른 이야기들도 끌고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경험 속에 “불편부당함, 강요, 편견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반대로 창작자들에게 풍부한 생각 거리를 주고 저항하게 하며,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여자로 살며, 여자 작업자로 수많은 저항 거리를 안고 작업하는 사람들은 작가로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 전시의 한 구석에서 사회에 내재한 편견과 제약에 눈 뜨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있음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작가들의 행운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