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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예술프로젝트 2015

삶과 예술과 기술을 이어 짓다
천원진 개인전, 〈지동 29길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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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하반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29-1길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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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과 기술을 이어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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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진은 이 시대의 많은 작가가 그렇듯이, 자신이 속한 (혹은 선택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미술을 지향한다. 그가 무늬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경기 문화바우처 사업과 인계시장 레지던시의 참여작가로, < 황금마차 프로젝트 >의 작가로서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설명하는 몇 가지 키워드들, 이를테면 지역, 지역민, 소통, 문화 복지, 예술의 사회적 역할 등은 그의 예술 세계를 공동체예술 내지는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로 규정하게 한다. 이런 거친 규정을 전제로 작가에게 당신은 어떤 작업을 해왔느냐는 질문을 하자, 그는 대번에 ‘남들을 위한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이 예술의 맥락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기존의 장르에 포섭되지 않는 형태의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해온 것과 같은 형태의) 작업이 왜 예술일 수 없는지 묻는다.
 
그의 반문에는 두 개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하나는 일반인 혹은 지역 주민과 함께 진행하는 공공미술에 대한 불신이다. 즉 공공미술의 일부 사례들이 지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작가의 프로젝트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회의다. 작가는 어느 날 지동 일대에 그려진 벽화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었는데, 외부에서 들어와 지역과 실거주민에 대한 이해 없이 일종의 이벤트처럼 행해지는 일련의 공공미술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특별하지 않게 다가가는 법’을 고민한다. 작가는 2012년 11월부터 약 3개월간 진행했던 < 황금마차 프로젝트 >에서 길 한구석에 벤치를 만들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앉아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렇게 그는 일상의 공간에 개입하되 요란하게 자신을 알리지 않고, 작업을 매개로 사람들과 만나되 작품이 감상이나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서비스에 가깝게 자리매김하기를 원한다. 천원진이 가진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일을 하지 않는 예술가’에 대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일하지 않는 예술가에 반대한다. 이는 예술이 가진 고답적인 태도와 삶과 결부된 실천이 결여된 예술에 대한 거부이기도 한데, 이 지점에서 그의 예술은 예술이라는 개념에 포섭되기 이전의 일반적인 제작 행위 전반으로 뻗어 나간다. 고대 그리스에서 다양한 종류의 지적, 육체적 제작을 이를 때 사용했던 단어인 포이에인(poiein)에서 후대에 가장 고귀한 예술인 시를 다루는 학문, 시학(poetics)을 이르는 용어가 파생되어 나온 것을 상기해보건대, 예술에 관계된 것에 대한 천원진의 태도는 매우 근본적이고 순수한 층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지동 29길 프로젝트 >는 수원성 밖의 가장자리인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축적된 문화 코드와 기억을 찾아 나누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가 기획된 경위는 수원 화성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화성 인근 지역이 겪어야 했던 부침들과 궤를 같이한다. 때로는 원도심 활성화라는 명목하에, 또는 유네스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화성 주변에서 진행되는 도시 정비 사업들은 이미 그 공간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을 정리하고 손질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작가가 수년간 생활하고 작업을 이어온 지동 29길 역시 화성에서 500m 이내에 속하는 지역으로, 곧 성 외곽 공원화를 위해 거주시설이 철거될 예정이다. 작가는 본 프로젝트에서 도시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만 하는 지동 29길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온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했다.
 
앞서 이야기했든, 천원진은 제작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매체제작자로서의 작가다. 본 프로젝트에서도 그는 “길에서 이동하는 시간에서 새로운 사건들을 접하기” 위해 인력거를 제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실, 작가가 주목하는 새로운 사건이란 ‘수원성 밖’이어서 주목받지 못한 채로 이어져 온 주변부의 역사이며, 도시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쉽게 잊히고 마는 개인의 이야기이다. 사소하다고 여겨져서 곧 사라질 개인의 이야기를 얻기 위해 작가는 그들의 매일 매일을 관찰한 끝에, 그 매일의 삶 속에서 필요의 일부가 되는 방법을 발견했다. 바로 마을에 없는 새로운 이동 수단인 인력거를 직접 만들고 스스로 운행하는 것이다. 지동 29길에 출현한 인력거는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다. 현대문명의 발전이 곧 기술의 발전사와 같다고 한다면,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이동수단은 고효율과 안정성을 추구하는 동력 기계일 것이다. 이와는 완전히 반대의 논리로 움직이는 인력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기에 비경제적이며, 날씨나 도로 사정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철 지난 기계이다. 한 마디로 운행자나 탑승자 모두에게 수고롭고 번거롭다. 그러나 이런 인력거의 특성 때문에, 앞서 인력거를 끌고 가는 작가와 뒤서 앉아 가는 주민은 공통의 시간과 거리를 몸으로 공유한다. 시간과 거리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인력거는 곧 소통의 매체가 되고, 더불어 소통의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 추억, 음악, 냄새를 다시 공유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작가는 인력거를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꾸며 타는 이에게 색다를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인력거의 운행 도중 깜짝 공연을 선보이거나, 탑승자와 거듭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인력거를 일종의 동네문화발전소이자 저장소로 탈바꿈시킨다.

작가는 인력거를 끌고 가을에서 겨울까지 지동 29길의 내리막길과 언덕길을 오가면서, 본 프로젝트가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들과 개인적인 경험과 시간을 함께 점유하는” 예술로 완성되기를 바랐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거주 지역 철거를 앞두고 마치 폭풍전야와 같이 쓸쓸한 지동 29길에 잠시나마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앨런 캐프로(Allan kaprow)의 말처럼, ‘예술(Art)이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beauty making)이 아니고, 의미를 만드는 것(meaning making)’이라면, 천원진의 작업은 그의 손과 몸을 재료로 의미를 만드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둘러싼 여러 여건상, 작가는 본 프로젝트의 기록과 전시를 온라인 공간에서의 영상 발표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고정된 장소와 제한된 시간 안에서 보여주기보다는 과정 그 자체로서의 전시를 지향하는 ‘의미의 예술’일지라도, 장기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그 과정과 결과 양쪽 측면 모두에서 나눌 기회가 부족했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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