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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별별 예술프로젝트 2015 ​ ‌

'문화교차로'에서 열린 관계 맺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단골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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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2. / 9. 9. / 12. 8.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일대 및 리트머스 갤러리

​‘문화교차로’에서 열린 관계 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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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이하 리트머스)’가 2007년 이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이주와 노동, 사회·문화적 소수자 공동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리트머스를 구성하는 작가들의 수도 그렇거니와, 리트머스라는 공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활동 혹은 작업은 장르를 특정할 수 없을만큼 다양하지만, < 단골손님 >에 한하여 그 성격을 거칠게나마 정의하면 ‘공동체 예술(커뮤니티 아트)’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예술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끌어오려면 먼저 공동체의 범위와 의미의 규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리트머스의 < 단골손님 >이 정하는 공동체는 원곡동 일대에서 경제활동을 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형성하는 가시적/비가시적 사회와 문화 일반까지도 포함한다. < 단골손님 >이 프로젝트의 실행 지역 혹은 대상인 공동체 개념을 편의상 행정구역 명칭인 원곡동이라 이르고 있지만, 원곡동은 주민의 상당 비율이 이주민으로 이루어지는 다문화 지역인 만큼 그 공동체 실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리트머스가 이미 인식하고 있듯이, 그 공동체가 ‘혼성문화의 생태계’로서, “현대 도시민의 이주 문화의 특성과 타국 현지에서의 융화(harmony)와 통합(integration), 그리고 그로 인한 복합적인 문화 창조의 중심”이라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그 공동체에 접근하고, 개입하고, 예술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고민을 거듭해야만 하는 과정이었음이 짐작된다.
 
이 고민의 시작점인 프로젝트의 기획은 이렇다. 7명의 예술가가 원곡동의 문화적, 지정학적 특성을 대변하는 거점을 지속해서 방문하여 스스로가 ‘단골손님’이 되어, 해당 거점의 사적 영역에 개입해 한국 사회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담론들을 예술가의 시선과 언어로 발견, 기록, 발표한다. 작가들 모두는 문화혼종성 내지는 혼재성이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하지만, 무엇이 섞여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지를 읽는 각자의 초점이 달랐기에 작업의 방식과 결과물에서 상당한 차이가 발생했다. 이들의 독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원곡동이라는 유형/무형의 공간성에 주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며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사람에 주목한 것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최두수 작가는 원곡동을 이주민의 이곳에서의 일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겹쳐진 공간으로 파악한다. 매 순간 일상의 틈에 고향의 기억이 섞여들어 오면서 원곡동은 이주민들의 다중적인 심리가 표출되는 공간이 된다. 또한, 취두수는 원곡동의 도로가 행인이 쉬이 목적지에 안착하지 못하게 만드는 다방성(多方性)을 지닌다고 본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교차하고, 이주민들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언어와 이미지,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결합해 원형 테이블, 바나나,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간을 비추는 램프, 시계가 한 데 놓인 장면을 연출한다.
 
장성진 작가는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쉽게 접하는 오락 거리인 껌 씹기를 차용해 < 껌값 앞에 평등하다 >를 선보인다. 이 작업에서 그는 다문화 지역인 원곡동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들을 종이에 적고, 한 종이에 가치 평가가 배제된 현상들을 짚는 단어들을 겹쳐 적는다. 또렷한 글자와 희미한 글자가 중첩된 종이는 그 자체로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인 상태로 한 자리를 공유하며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 앞에는 자신을 향한 부정적 견해들을 세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또 하나의 장(場)이 마련되어 있다. 부정적 요소의 제거는 껌을 씹는 행위로 달성되는데, 작가와 지역 주민이 이 장에 모여 껌을 씹으면서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토해 낸다.
 
구수현 작가의 < 키친아트(스타일 수집하기) >는 자본주의 시대에 유통되는 인공물이 국가와 문화를 넘나들며 혼합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미 자신의 기원을 상실하고 정형화된 이미지와 양식으로만 유통되는 인공물은 혼종화의 상태에 놓인 우리 시대를 읽는 지표가 된다. 작가는 원곡동에 있는 네팔 식당의 식기가 취하는 양식과 실제 생산국의 불일치에서 이 지표를 처음 발견하고, 그와 같은 사물들을 수집해 진열한다. “문화 교차로”에서 건져 올려진 사물들은 자본주의 시대의 이미지 소비 방식과 문화적 순환성을 환기한다.
 
김태균 작가는 거시적 공간보다는 공간을 구성하는 점으로서의 개인에 집중한다. 김태균은 원곡동의 ‘베트남 고향식당’과 ‘성성식당’에 ‘(문화적) 접경 지역의 미술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식당 주인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상 < 단골 손님 > 두 편을 상영한다. 두 식당이 운영된 긴 시간에 비례해 축적된 베트남과 중국에서 건너온 사물들로 인해 식당 내부는 박람회의 지역 전시관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주인은 한국 사회 안에서 문화 교류를 발생시키는 수집가이자 전파자로 자리하게 된다.
 
송지은 작가는 가상의 인물 ‘두리안걸(Durian girl)'을 내세워 원곡동에 포진해 있는 식당, 은행, 노점 등의 풍경을 소셜 미디어의 공간에서 유쾌한 문체로 소개한다. 이는 윤락, 성매매, 폭력, 범죄 등 부정적 키워드로 인식되고 있는 원곡동을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조명함으로써, 기존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는 동시에 원곡동의 실체를 감각하는 미디어 창구의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다. 송지은 작가의 작업은 공동체 예술로서 지역에 밀착해 들어가되, 스스로 전면에 나서지 않고 커뮤니티 구성원과 커뮤니티의 외부인을 소셜 미디어 공간에 끌어들여 느슨하지만 즉각적인 관계를 맺어나간다.

< 단골 손님 > 프로젝트는 (이)주민을 단순히 어떤 경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존재가 아니라, 이미 지금 이곳에서 뒤섞여 살아가는 존재로 상정하고 어떻게 인식하고 현실에서 관계 맺을 것인지 고민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단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국가는 그들을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환경이 낙후된 국가에서 돈벌이를 위해 국경을 넘어온’ 자들로 인식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을 자본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에 소요되는 몸으로서만이 아니라, 마음은 여전히 고향에 두고 자신의 쓸모는 이곳에 둔, 어느 한쪽으로도 완전히 속할 수 없이 사이 공간에 있는 자들로 바라본다면 이들의 존재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 단골손님 >의 기획은 작가 스스로가 어떤 판단 기준을 제시하거나 프로젝트와 관계된 이들을 확정된 단일한 의미 체계로 편입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가 언제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손님이 되어 혼종적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열어 두며, 그 대상이 가진 각양각색의 양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프로젝트 수행이 결집된 결과보고 전시는 작업 간의 밀도와 온도 차이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지역을 거시적으로 바라본 작업의 경우 ‘지금 여기’ 원곡동의 현장성을 획득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프로젝트를 끌어가는 리트머스는 각기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원곡동에, 그리고 원곡동의 사업장에 접근하는 작업 과정을, 나아가 그 결과물을 현장과 더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세심하게 접근했더라면,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 아닌 ‘단골’이 되는 프로젝트로서 그 역할이 부각되지 않았을까.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송지은의 말처럼 반년 간의 프로젝트가 “(원곡동의) 실체에 반응하기 위한 감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과정”이라면, 더욱이 그것이 느슨하게나마 커뮤니티 아트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진 작업이라면 해당 지역을 들여다보기 위한 과정상의 세밀한 장치들이 더해지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