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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별별 예술프로젝트 2015 

무엇이든 만들어보세요: 
                     동네 청년 즉흥제작소
예술집단 ‘사이다’, 
​행궁동 문화예술 네트워크 〈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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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1. ~ 10. 20.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무엇이든 만들어보세요: 동네 청년 즉흥제작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한껏 침체한 세계 경제 침체의 여파를 한국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고용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이는 일자리의 질을 악화시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명의 노동자로서의 몫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회인의 자격 미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기 많은 이들에게 삶이란 살아감이 아니라 사회의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버티고, 해내고, 이겨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삶이 이리 고단하고 미래가 막막한 것이 어찌 청년뿐이겠느냐마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한국출판사상 최단기 100만 부를 돌파하고, 저자의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 일으켰던 대단한 반향은 당시 모든 세대가 청년들의 불안과 고민, 그리고 아픔에 공감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출간된 지 꼭 5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그리고 이 시대의 청년들의 아픔이 조금은 나아졌을까? 이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상황이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청년들 스스로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과 같은 청춘’이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악화일로 속에서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결정하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청년이라는 낱말은 모든 시대에 그 자체로 새로움과 동의어일 수 있다.
 
예술집단 사이다(이하 사이다)는 외롭고 불안한 삶과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일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길 원했던 최서영 대표의 고민 끝에 창립된 단체이다. 사이다는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정과 정 ‘사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사이’”를 찾아가는 이들이 모인 단체다. 그렇기에 사이다가 청년들과 작당하여 일시적 공동체로서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생산·확대해보자는 일을 벌인 것이 사이다에게 썩 어울리는 일로 보인다. 사이다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지 못하는 데 안타까움을 느꼈고, 사이다가 위치한 행궁동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청년들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공간 실험이자 사람 실험으로서 문화예술 네트워크 < 평상 >을 기획했다. < 평상 >이 행궁동에 문을 여는 7월이 되자, 사이다는 손님이자 주인이 될 이들을 초대하는 카드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
삶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던 그때처럼,
청년들이 모여 평상을 놓았습니다.
평상 위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마을을 살리는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될 것입니다.
 
초대받아 찾아간 행궁동에는 정말로 평상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평상이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공간을 리모델링하면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평상인’이 되어 함께 비빔밥을 비벼 먹고, 각자의 160살 인생 그래프를 그려 발표하고, 독립영화를 보며 대화하고, 빗속에서 기타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적잖이 낭만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낯선 이들 사이에 발생한 경험의 공유는 < 평상 >이 자율성과 개방성을 가장 큰 운영 원칙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원칙은 이후 12월까지 이루어진 크고 작은 이벤트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정기 모임에서 평상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최소한의 규칙만을 설정하고 정해지지 않은 활동을 지향한 결과, 잉글랜드와 네팔과 인도식 밀크티 대결, 사진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다화회, 팟캐스트 방송, 평상인들의 자발적인 강연, 8.8 데이 마당 식사와 공연, 우쿠렐레 강습 등 주도적 평상인의 기획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가 열릴 수 있었다.
 
< 평상 >의 이름으로 열린 이벤트는 행궁동 안팎으로 예기치 않은 교류들을 끌어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행궁동의 게스트 하우스 ‘공존공간 슬리핑 테이블’과의 만남, 지역 내에서 자립적 경제모델을 실험하는 청년들과의 대화, 수원에 설립된 예정인 경기청년문화창작소 조성에 앞서 마련된 청년 관련 담론의 장이었던 < 놀장 >에 참여한 것 등이 있다. 사이다 내부적으로 넓게는 수원, 좁게는 행궁동이라는 지역에 평상인이 더 파고들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루어두고 (그러나 실제로는 포기하고)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 평상 >에서만큼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실험해볼 수 있는 있었다는 것에 모임이자 공간으로서 평상의 의미가 있다. 평상의 개장을 계기로 모인 청년들은 서울이 아닌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취미 공유자를 만나고, 주류나 중앙이 아닌 외연과 주변에 대한 관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눔은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는 그 옛날 평상이 정해진 약속의 장소가 아니라 오가는 길에 잠시 들러 이야기와 삶을 풀어놓는 나눔터가 되었듯이, 행궁동의 < 평상 >이 청년들 사이에, 청년과 지역 사이에 연결 다리가 되고 기대와 기획을 실현할 기회를 만나게 해주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뜻한다.
 
공식적인 프로젝트 수행 기간이 종료된 시점에서 물리적인 평상은 남지만, 평상에 모여들었던 평상인들은 떠날 것이다. 걔 중에는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2015년의 해프닝으로 평상에서의 모임을 갈무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이다가 평상 프로젝트를 일회적 실험이 아닌 지속적인 실행으로 이어나가려 한다면 향후 운영 시 다음의 지점들을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청년이라는 참여 주체 존재 규정이다. 청년을 일차적으로는 20대 언저리의 사람들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또래 집단으로 파악할 수 있으나, 그 집단 안의 낱낱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욕구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점들의 집합일 것이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사이다가 상정한 ‘청년’이라는 대상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청년들’ 사이에는 기성세대가 짐작하는/기대하는 청년상과 그것을 거부하는 청년이라는 관계 양상도 드러났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청년이기에, 평상이 이들과 함께 예술문화생산지로 기능하고자 한다면 대상에 대한 좀 더 유연한 접근과 이해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 문화예술 네트워크와 일반적 의미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에서의 균형 내지는 집중이다. 평상이 ‘청년 문화예술 네트워크’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일부 평상인은 평상의 활동을 여타 사회적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어떤 가시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도 했단다. 평상이 청년들의 자발적이고 자립적인 예술 활동 혹은 문화기획 작업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작용하려면, 해당 분야에 비전과 니즈를 공유하는 참여자들이 모여 시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지점이다.
 
셋째, 지역주민들과의 교류 접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의 문제다. 행궁동의 평상은 문이 달린 실내에 있다. 이 문은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문과 같아서 평상은 누구나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는 광장과 같다. 그런데도 프로젝트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평상의 자유로운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오히려 지역주민들이 평상에 특정한 목적 없이 쉽게 드나들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돈을 받지도 않고 출입 자격도 없으며 의무나 규칙도 없는 무규정·무목적의 성격을 띠는 공간의 의미를 쉬이 이해하고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공간이 지역 내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지역 주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지역 내 다른 공동체나 다른 세대와의 융합 및 교류는 기획에만 그칠 수도 있다.
 
2012년 동네잡지 더페이퍼(The Paper)와 함께 시작한 사이다는 지역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골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나누어 왔다. ‘우리들만의 문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온 사이다가 청년과 (나이는 비록 청년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청년이기를 바라는 이들을 이어주고, 청년이 실로 푸르른 상상으로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장(場)으로서 평상을 하나 둘 늘려나갈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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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주: 
예술집단 사이다가 문화예술진흥지원금 신청서의 사업계획서에서 밝힌 프로젝트 이름은 본디 < 프로젝트 그룹 肉 >이었다. ‘1개의 공간과 6명의 사람, 그리고 6개월의 변화’를 의미하는 이 프로젝트명은 청년 3명과 경력단절여성 3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후 교부신청서에서는 동네 공간 상상 프로젝트 < 청년소셜멀티방 19 >로 프로젝트명이 변경되었다. 이로써 프로젝트의 대상을 청년층으로 한정하고, 그들을 사회관계망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목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었다. 프로젝트가 실행된 7월에는 그 이름이 행궁동 청년 문화예술 네트워크 < 평상 >으로 한 차례 더 변경되었다. 이번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인 행궁동, 영역인 문화예술, 방식인 네트워크를 ‘평상’이라는 사물로 은유했다. 초기 기획안과 사업의 실행 사이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자 프로젝트 담당자는 “프로젝트 안의 프로그램들을 구체적이고 생활에 밀접한 것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과정이지, 공간과 만남, 서로 다른 계층 간의 융합이 빚어내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변화를 실험하고자 하는 방향성은 동일하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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