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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多컴 2016 선정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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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목소리〉 
이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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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9. ~ 1. 25.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가 도시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들리지는 않고 보이기만 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했던가. 물리적 소리 없이도 행인에게 기세 좋게 말을 거는 전단의 문자와 이미지를 재해석해 도시의 목소리를 보여준 이강소 작가의 < 도시의 목소리 > 展을 소개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 온 이강소 작가는 간판이나 전단의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한 지역 안에서 내걸리는 광고물에 묻어나는 특징에 흥미를 느끼는데, 그것이 일종의 욕망의 징후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초역세권 건물’, ‘필라테스’, ‘창조경제’ 등 일상적으로 접하는 별것 아닌 단어들이 실은 지역민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관점에서 홍대 인근 지역에 산재한 광고물을 그러모아 도시의 이야기를 가시화하는 < 도시의 목소리 >를 기획했다.
 
전시는 완성까지 수집, 분석, 제작, 설치 4단계를 거쳤다. 우선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중심으로 홍대앞 주요 장소와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서 광고물을 수집했다. 10월 말부터 걷고 싶은 거리, 어울마당 길, 공영주차장 길, 홍대입구역의 각 출구, 버스정류장, 홍익대학교 정문 등의 지역을 돌아다녔다. 수집대상은 대개 거리에 뿌려지거나 부착된 불법 광고물이었다. 명함크기의 인쇄물부터 포스터, 스티커, A4에 출력된 것까지 다양한 형식을 아우른다. 수집 과정에서 배포 방식과 상황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분석 단계에서는 수집된 불법 광고물을 키워드에 따라 분류했다. 예정된 키워드가 있었다기보다, 모인 데이터의 공통점을 찾아가며 분류하니 자연스레 그룹핑되었다. 홍대앞의 빠른 변화와 밀도 높은 상업성을 보여주는 건물 매매·임대 전단, 지역구성원의 연령이나 기호를 짐작하게 하는 취미나 여가생활과 관련된 전단, 미술 학원 밀집 지역에 붙어 있는 과외 전단 등이 주를 이루었다. 전봇대에서는 인력, 소액대출, 아티스트 스티커, 스텐실 등을 발견했다. 키워드 외에 전단이 부착된 환경, 방식, 이미지, 텍스트도 고려하여 전단을 내용적으로 세분화하고, 실제 작품제작을 위한 밑 작업을 했다. 작품 제작 단계에서는 전단의 문구를 재배열하거나, 특정 문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화면 안에서의 배치, 색상 조정 작업 등을 진행했다. 작가가 손을 직접 놀리는 드로잉이나 페인팅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콜라주와 미디어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완성된 작품은 앞선 리서치 및 제작 과정을 그대로 표면에 드러냈다. 동시에 표상화된 도시의 목소리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수반되었다. 상가매매나 분양광고 관련 문자를 어지럽게 중첩해 도시인의 욕망을 켜켜이 쌓아놓은 평면작업 두 점, 전봇대에서 발견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바탕으로 고단한 도시의 삶을 직접적으로 또는 암호처럼 증언하는 평면 작업 한 점, 비교적 홍대의 지역 특색을 담고 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작업이나 스텐실 바밍bombing, 밴드 스티커로 갑갑한 도시의 행동 규율에 대한 항거를 표현한 작품이 걸렸다. 그밖에 전단에서 뽑아낸 몇 개의 단어-#홍대, #초역세권, #카드, #서교예술실험센터, #과외, #상가-를 포함한 트위터의 텍스트를 그대로 전시장 벽에 불러들이는 무빙 타이포그래피 프로젝션 맵핑, 그리고 전단 수집과정을 기록한 도큐먼트 영상도 상영되었다.
 
한편 작가가 도시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닫힌 전시장 안에만 풀어놓지 않고 다시 도시에 되돌려주는 시도가 프로젝트에 포함된 점이 흥미롭다. 이 시도는 전단의 거주지인 거리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행해졌다. 작가가 수집한 광고물에서 추출한 소재로 도시인의 정서를 담은 글을 쓰고, 이 글을 프로젝트를 위해 개설된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에 게재했다. 동일한 글이 전단 형태로 제작되어 전시장 안의 평면작업들 사이에 놓였다. 또한, 이와 유사한 전단이 자신에게 글감을 내어준 광고물이 붙어 있던 자리로 돌아가 부착되었다. 이로써 도시의 목소리와 작가의 목소리가 전시장 안팎에서 공존하고, 무분별하게 나부끼던 광고문구들은 정제된 메시지가 되어 도시의 한편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강소 작가는 디자이너에서 작가로 자신의 자리를 새로 매기면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아닌 자신의 시각과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에 대해 “아티스틱 리서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것이 성립되려면 그 방식과 전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고민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조각나 있는 도시의 기표들을 밀도 있게 구조화하고, 그로써 지금 이곳의 현상과 움직임을 자신만의 맥락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레지던시 입주를 계기로 트위터를 연동한 맵핑 작업이나 평면 작업을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한다. 홍대가 아닌 또 다른 지역에서 찾아낼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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