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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한 시기의 회화〉 

전영진 개인전
《MATERIAL IS FORM》
2020.09.16-2020.09.29
디아트플랜트 요갤러리

전영진 작가는 십여 년간 〈Canvas Play〉와 〈Painting for Painting〉 시리즈를 통해 자기의 회화 세계를 선보여왔다. 그간 전영진 작가의 작업은 ‘회화를 위한 회화’로 설명되어 왔다. 그가 모더니즘 회화의 강령인 이른바 회화의 본질로서 평면성을 추구하며 캔버스라는 매체를 연구한다는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의 회화 재료 중 겉으로 드러나는 아크릴 페인트와 단번에 감지되지는 않지만 작업 과정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매직 블록과 마스킹 플루이드, 그리고 캔버스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 또한 여전하다. 명료한 선, 단단한 면, 이러한 선과 면의 흐름을 타고 자리 잡은 색이 관객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을, 대개는 소위 대자연이라 불릴 풍경을 불러온다.

전영진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Painting for Painting〉과 〈Canvas Play〉 시리즈의 신작도 큰 틀에서 전작과 같은 노선을 취한다. 점, 선, 면, 색이라는 회화의 기본 요소에 충실히 집중한다. 기법적으로는, 아크릴 페인트를 칠하고, 필요에 따라 페인트 칠한 면을 보호하거나 구분하기 위해 마스킹 플루이드를 사용한다. 매직 블록으로 페인트를 지우기도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은 풍경을 만든다. 전영진의 회화는 분명 특정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지점은 ‘방식’인가 ‘무언가’인가, 아니면 ‘연상’인가? 모두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가?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전영진의 회화, 나아가 회화라는 예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화면의 유희

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영진의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표현이 담긴 〈Canvas Play〉 시리즈의 신작을 좀 더 살펴보자.

첫째는 구도를 지배하는 곡선과 온전한 형태를 한 원의 전면적인 등장이다.
물론 전영진의 이전 작업에도 곡선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곡선’이나 ‘원’이라고 부르기 적절하지 않았다. 물감이 흘러내리거나, 짧은 선이 모여 이루는 각이 완만해서 곡선에 가까워 보인다거나, 또는 모서리가 둥글려진 다각형에 가까웠다. 비정형의 곡선이 완전한 원이자 분명한 모티프로 대두된 것은 2018년도에 이르러서이다. 2018년 〈Cutted Canvas〉 연작에서 곡선이 쓰인 형상이 나타나고, 2019년 〈Circle Composition〉 연작에서 작품명처럼 온전한 원이 테마가 된다. 그러던 것이 2020년 근작에 이르면 흩뿌려진 물감 방울, 겹쳐진 호弧, 크고 작은 원, 화면을 가로지르는 넘실대는 곡선이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그런 만큼 연이어진 직선과 사각형이 끌어가던 단단하게 짜인 분위기가 감소된다. 이전 작품들이 간접적이나마 작가가 무언가를 지시하는 풍경이었다면, 구성적으로 유연해진 신작은 관객이 각기 다른 정경을 짐작게 하는 심상의 구현과도 같다.

둘째는 질감 그 자체로 형태와 물物이 되는 미디엄의 사용이다.
전영진은 최대한 납작하고 평평하게 그리되 형상을 만드는 것을 자기 회화의 목표로 삼아왔다. 이번 전시에 걸린 〈Painting for Painting〉 시리즈에서 보이듯, 그는 평면성을 추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감, 양감, 원근감 등을 배제해왔다. 구체적인 과정은 이렇다. 페인트를 얇게 여러 번 발라 미리 구획된 칸을 채운다. 페인트가 겹치지 않도록 마스킹 기법을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매직 블록으로 물감을 지워 말끔하게 마무리한다. 그렇게 페인트는 뒤섞이지 않고 캔버스 위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영역만을 차지하는 하나의 색/면이 된다. 그리고 이 색은 이웃하는 색과 만나 관객이 구체적인 형태와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이 된다. 많은 풍경화가 그러하듯 페인트가 겹쳐지고 섞이면서 하나의 풍경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전영진의 풍경화에서는 온전히 색으로 기능하는 수많은 면들이 캔버스 위에 평등하게 자리하고 관계 맺음으로써 하나의 풍경이 구축된다.

그렇다면 〈Canvas Play〉 시리즈의 신작에서 보이는 질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흔히 마띠에르라고 불리는 재료가 만들어내는 질감은 일반적으로 입체감과 함께 시각적 느낌뿐만 아니라 촉각적 느낌을 촉발한다. 때로는 아주 도드라지는 마띠에르가 회화의 전체 화면보다 먼저 다가오기도 하며, 작가의 기법적 특징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영진의 회화에서 질감은 이와 다르다. 〈Canvas Play 20no04〉 , 〈Canvas Play 20no32〉 , 〈Canvas Play 20no33〉 등에서의 반짝이고 갈라지는 미디엄, 〈Canvas Play 20no61〉 에서 두텁지만 가볍게 올려진 미디엄 등은 그 자체로 돌이 되고, 해가 되고, 구름이 된다. 지시 대상을 전제로 한 미디엄이 아니라 그 물성 그대로 물物이 된다. 전영진은 이를 회화에서만 가능한 표현법으로 본다. 캔버스에 올려진 회화의 재료가 그 자체로 구체적인 형태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형태가 속한 캔버스 화면과 별개의 서사를 끌어오지 않으면서, 동시에 온전히 재료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기능하는 것 말이다. 이는 그가 추구해온 페인트/색/면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은 관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형태들의 배치다.
상술했다시피, 전영진은 화면에서 원근감을 제거하려 했고 이와 함께 공간감 또한 제척했다. 다만 보는 이에 따라 화면 속 형태들이 재배치되어 선후 관계를 형성하긴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흐르는 강 뒤에 산이 있다거나, 해가 산봉우리 뒤로 넘어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전영진의 작품을 다시 보면 이는 자연물을 재현하는 흔한 방식에 따른 관념의 작용이자 축적된 경험에 따른 습관적 귀착임을 알 수 있다. 〈Painting for Painting 19no02〉 의 경우에도 점진적인 색의 변화, 명암 대비, 잘린 선에 의해 풍경이 조성되었기에 깊이를 추적해볼 뿐, 실제로는 하늘, 구름, 해, 산, 바다, 모래사장 등으로 인식될 수 있는 형태들이 명확한 진출과 후퇴 없이 나란히 놓여 있다.

〈Canvas Play〉 신작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유지된다. 하지만 원, 사각 기둥 등이 겹쳐 배치되면서 원근감을 만든다. 원근감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으나, 중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화면 속 형태의 정의와 관계가 달라진다는 설명이 더 정확할 것이다. 〈Canvas Play 20no32〉, 〈Canvas Play 20no33〉는 세로 기둥이 원을 가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완전한 원 따위는 없고 조각난 형태들만 있는 것인지 확언할 수 없다. 〈Canvas Play 20no52〉에서 〈Canvas Play 20no57〉 에 이르는 작품에는 좀 더 다양한 형태가 등장한다. 구분하고 무리 지어 정의하고자 하는 우리의 지각적 욕구 때문에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 어떤 풍경으로 다가왔을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 간의 선후, 전후, 좌우 관계가 흔들린다. 풍경의 기저에서 시선의 흐름을 이끄는 광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이런 효과에 일조한다. 시작점과 끝점을 단정 지을 수 없는 이미지는 좌우로 무한히 확장될 것 같다가도 반대로 38x38cm 캔버스 안으로 수렴한 세계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을 잇는 회화

전영진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작업에서 배제했던 요소를 끌고 들어오면서도, 자기 회화의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이는 자기 전복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회화에 이미 있던 것들을 새롭게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린버그가 모더니즘 회화는 순수하게 회화 스스로 구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갱신할 것 또한 중요한 특징으로 주장했듯 말이다. 이는 전영진의 회화가 일찍이 평면성이라는 용어로 소개되고 설명되었지만, 그것에 담긴 많은 의미와 맥락으로도 다 설명되지 않는 동시대 회화의 평면성을 찾아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영진은 현대의 기법으로 회화를 하되 어느 시기로 편승하지 않는 이미지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는 고대로부터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풍경을 그린다. 한편으로는 특정한 이미지를 지시하는 언어가 배제된 작품명 “Canvas Play”가 말해주듯이, 작가는 자기가 캔버스에 펼쳐놓은 색/면의 향연을 관객이 있는 그대로 즐기기를 또한 바란다. 다시 말하면 곧은 선, 질서정연한 패턴, 정밀한 배치 등이 선사하는 균형, 조화, 리듬,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변주와 위트를 무언가의 모사나 재현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그는 이렇게 21세기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기의 방식으로 회화에 자유를 선사한다.

전영진이 탐구하고자 하는 요소란 비단 회화의 기법이나 매체성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작품의 어떤 요소가 “회화를 버리지 못하는 작가와 관객과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회화로의 사랑”으로 이끄는지 찾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지의 서사는 없지만, 전영진만이 꾸려온 회화의 서사가 전개되는 회화 세계. 전영진이 회화를 연구하면서 자기가 찾은 답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 그 감동이 그리는 이와 보는 이를 이어주고 “인간과 인간을 잇는” 순간에 도달하는 것. 이것이 전영진 작가가 소망하는 회화의 목표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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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전영진의 작가노트 “모든 것이 다 한 시기의 회화는 과거와 반대되는 지점에서 읽혀야 한다.”는 구절에서 인용

**  2009~2012년에 집중적으로, 그 이후 2017년까지도 캔버스에 언어가 직접 제시되는 작품도 있다. 이는 평면성을 강조하면서 추상으로 흘렀던 모더니즘 회화화는 달리 개념미술의 방법론을 가져온 것으로, 작가가 재현적인 혹은 재현적이라고 불려온 풍경만을 그려온 것은 아님을 밝힌다.

*** 본문에서 언급된 작품 목록
 〈 Canvas Play 20no04〉, mixed media on canvas, 45.5X33.4cm, 2020
 〈Canvas Play 20no32〉, mixed media on canvas, 19X33.4cm, 2020
 〈Canvas Play 20no33〉, mixed media on canvas, 19X33.4cm, 2020
〈Canvas Play 20no61〉, mixed media on canvas, 31.8X40.9cm, 2020
 〈Painting for painting 19no02〉, acrylic on canvas, 97X130.3cm, 2019
 〈Canvas Play 20no52〉,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Canvas Play 20no53〉,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Canvas Play 20no54〉,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Canvas Play 20no55〉,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Canvas Play 20no56〉,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Canvas Play 20no57〉, mixed media on canvas, 38X38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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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이미지의 서사〉 

김리아, 남지우
《레인보우 하모니》
코로나19 서울 공공미술프로젝트

은평구 불광천은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자연형 하천으로 재정비되었다. 현재는 일 년 내내 민물고기와 철새를 구경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하천으로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벚꽃 철이나 밤산 책 하기 좋은 계절에는 서울의 산책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불광천은 지하철 6호선 응암역에서 월드컵경기장역 부근까지 흐르는 약 9km의 짧지 않은 천이기에 그 좌우를 잇는 징검다리와 보행교가 여러 개 있다. 그중 최근에 설치된 ‘은평레인보우교(이하 레인보우교)’(2009년 10월 6일 개통)는 보행교로서 본연의 역할 외에, 고즈넉이 북한산을 조망하며 쉼을 즐기는 주민을 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김리아와 남지우의 〈레인보우 하모니(Rainbow Harmony)〉는 바로 이 레인보우교에 설치된다. 위에서 보면 마치 알파벳 K처럼 보이는 레인보우교는 교량 양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특이한 구조다. 자연스레 분기점에서부터 교량이 끝나는 지점까지 삼각형의 공간이 생겨난다. 두 작가는 다리를 건너면서 그리고 다리 아래를 지나면서도 볼 수 있는 이 삼각형 공간에 설치할 작품을 기획했다. 김리아는 빛이 투과하거나 반사되어 만드는 상을 이용하여 새로운 조화를 끌어내는 〈harmony〉 시리즈를 선보여 왔는데, 〈레인보우 시리즈〉는 이 연장선에 있다.

김리아와 남지우는 무엇보다도 불광천의 다양성과 생명성에 주목했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다양한 어종과 조류의 터전이자 산책로를 찾는 남녀노소와 이들의 반려동물이 어울리는 장소로서 불광천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작품 제작을 맡은 김리아는 다양한 유기체의 집합을 산의 형태로 표현해온 본인의 작업 언어에 따라, 북한산을 상징하는 삼각형의 틀 안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불광천의 생명체를 형상화한다. 순환하는 하천은 원형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불광천의 생태계가 200여 개의 오브제로 재탄생한다.

다양한 형과 색, 크기와 조합의 오브제가 빼곡하게 채워진 교량 사이의 공간은 그 자체로 불광천의 생명체를 한데 모은 군집과도 같다. 생명체가 어디에고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듯, 〈레인보우 하모니〉가 탄생시킨 생물군집은 땅과 하늘 사이를 유영하며 다리와 산책로 곳곳에 자기를 투영시킬 것이다. 강화유리와 강화아크릴로 제작될 오브제가 낮에는 햇빛을, 밤에는 다리의 조명을 그대로 받아낼 터이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의 오브제는 때로는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고, 때로는 빛을 그대로 투과해 시시각각 새로운 조합의 풍경을 일구어낸다. 섬세하게 짜인 작가의 의도와 우연한 자연의 연출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레인보우교의 전후좌우에서 얽히면서 산책자에게 더욱더 풍요로운 시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레인보우 하모니〉의 유동적인 면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빛과 오브제의 관계가 소리와의 관계로 확장된다. 두 작가는 레인보우교에 인접한 산책로 바닥에 센서를 설치하고, 이 센서가 감지하는 그림자의 변화에 따라 AI가 음악을 만들어 송출하는 사운드 작품을 함께 설치할 계획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민참여 프로그램으로 공공미술과 장소성의 의미 확장을 시도한다. 작가가 주민이 스케치한 모빌 디자인을 공모하고, 그것을 아크릴로 가공해 〈레인보우 하모니〉의 오브제와 같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키트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 키트를 받은 주민이 모빌을 만들어 자신의 공간에 걺으로써 자기만의 〈레인보우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한다.



〈후암동을 향한 두터운 마음, 
  《후암마중》〉 

이필립
《후암마중》
코로나19 서울 공공미술프로젝트

처음 만나는 사이에 이름이 무슨 뜻이냐, 어떤 한자를 쓰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는 자기를 소개하며 먼저 이름에 무슨 무슨 자를 쓴다고 밝히기도 한다. 호칭은 부르는 소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의미와 관계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필립에게는 용산구 후암동이 그런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후사를 빌던 동그랗고 두터운 바위인 이른바 두텁바위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터를 알리는 상징석과 후암이라는 이름만이 남아 있는 곳.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지만, 이름을 따져보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더듬어가며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까지 마음을 쏟게 된 마을. 이필립은 외부인임에도 친밀감을 느꼈던 후암동에 대한 자기의 첫인상을 떠올리며 작품을 기획했다.

 두텁바위로는 남산 산책길로 유명한 소월로와 달리 거주지역 안에 자리한 길이다. 이 길은 후암동을 ┛모양으로 크게 감싸며 이어진다. 이필립은 두텁바위로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 남산으로 올라가는 소월로 90계단에 가까워질 즈음 나타나는 높이 6~8m, 길이 180m의 거대한 옹벽을 《후암마중》 프로젝트의 대상지로 삼았다. 그는 오래도록 벽을 따라 걸으며 살아온 주민에게는 휴식과 재미를 안겨주고, 이곳을 처음 찾는 이에게는 언제까지고 긍정적으로 남을 첫인상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후암마중》 프로젝트에서 이필립이 고심한 문제는 높고 긴 벽에서 비롯된 단조로움과 위압감을 파훼하는 것이었다. 그는 먼저 벽을 세 개의 주 공간과 세 개의 보조 공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6개의 공간에 각기 다른 형태의 작품을 설치하여 기존 벽의 지루한 리듬에 변화를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첫 번째 주 공간 〈후암동의 기억〉은 ‘남산 끝자락에 있는 마을’로서의 후암동을 보여준다. 후암동의 지리적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배경 이미지 위에 작가가 직접 인터뷰한 후암동 토박이들의 말을 더해 완성될 타일 아트 월은 후암동의 지난 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주 공간 〈후암동의 순간〉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일종의 수직 공원이다. 후암로 28마길 끝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 두텁바위로로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벽면에 설치된다. 프로젝트 대상지가 남산에 인접한 길인데도 지금까지는 높은 벽 때문에 도리어 산의 푸르름이 가려진 장소다. 이곳에 덩굴식물을 이용한 벽면녹화를 실현함으로써 주민에게 한층 더 가까워진 녹음을 선사할 것이다.
세 번째 주 공간 〈후암동의 미래〉는 옹벽의 끝 지점, 즉 후암초등학교 입구 즈음에 설치된다. 마을의 현재를 살면서 동시에 미래를 그려갈 주민이 직접 식재에 참여해 완성하는 주민참여형 벽면녹지이다. 이필립은 성인뿐만 아니라 후암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식재에 참여할 것을 염두에 두고 〈후암동의 미래〉를 설계했다. 초등학생 학년별 평균 키를 고려해 식재 구조물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두텁바위로의 옹벽을 지나며 일과를 시작하고 마치는 어린이들에 대한 작가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세 개의 보조 공간은 〈잇기〉 벽이 된다. 〈잇기〉 벽은 벽면을 따라 걷는 보행자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빛과 형태를 빚어내는 LED 인터렉티브 아트 월이다.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주 공간의 작품 사이에 배치되어 《후암마중》에 활기와 재미를 더한다. 밤에는 보행로를 밝히는 조명의 역할도 담당한다.


 이필립은 《후암마중》을 통해 감상자가 입면을 새롭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고 강조한다. 높은 벽의 수직성을 변주하여 긴장감을 허물고 그 위에 식물, 조명, 텍스트 등을 이용해 율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한결같이 우리 곁을 지키기도 하고, 계절 따라 변화하며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는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후암마중》은 그러한 우리 삶의 걸음걸음이 그대로 벽면에 녹아드는 공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