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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多컴 2016 선정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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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레민! DIY 노이즈 머신 만들기〉 
최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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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1.
스튜디오 파이

다마고치(たまごっち)는 1996년 일본의 아키 마이타가 개발했고 이후 완구회사 반다이가 인수해 상품으로 내놓은 외계생명체 육성 게임이다. 다마고치는 일본어 ‘다마고(たまご, 달걀)’와 영어 ‘워치(watch, 시계)’의 합성어로, 휴대용 게임기 다마고치가 출시된 당시 그 인기가 세계적으로 대단했고 지금까지도 버전을 달리하여 꾸준히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십 년이 흐를 동안 플레이어들의 사랑을 받은 다마고치에 역시 마음을 뺏긴 작가가 있으니, < 다마레민! DIY 노이즈 머신 만들기 >를 통해 다마고치에 새로운 옷과 장신구를 입힌 최수빈 작가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최수빈 작가는 유년 시절 다마고치를 키웠던 기억을 회상하며 오리지널 다마고치를 구해 키우기 시작했고, 더불어 다마고치 육성 매뉴얼을 제작하기로 했다. 다마고치 매뉴얼의 시작은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은 플레이어인 작가 자신의 편의를 위함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 매뉴얼이 그 본연의 기능인 정보 전달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다마고치 플레이어들에게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다. 그래서 제작사에서 제공하는 기본 설명서를 번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마고치의 진화 과정이나 자신의 경험을 담은 공략을 추가하는 등 차별화된 매뉴얼을 독립출판물로 내놓았다. 매뉴얼을 제작하면서 작가가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다마고치의 매력을 인쇄물에 녹여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인쇄 방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합된 다마고치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1도 리소 인쇄(lithography)를 채택했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와 같은 판형을 적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리지널 다마고치, 신종다마고치 발견, 다마고치 4U+ 총 세 가지의 『다마고치 매뉴얼』이 탄생했다. 『다마고치 매뉴얼』은 각 50권이라는 비교적 적은 부수의 독립출판물로 시작했지만, 작가가 ‘출판’의 의미를 작업물을 발표하는 포맷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출판물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굿즈 판매, 이벤트, 워크숍 등을 출판에 포함되는 행위로 연결함으로써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결과물로 확장되었다
 
이 결과물 중 < 소액多컴 >에 선정된 부분은 『다마고치 매뉴얼』의 출간기념회이자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기획된 < 다마레민! DIY 노이즈 머신 만들기 > 워크숍이었다. 이 워크숍은 다마고치를 서킷 밴딩(Circuit Bending)*의 방식으로 개조하여 테레민(theremin)과 같은 전자악기 ‘다마레민(Tama-remin)’을 만드는 법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약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은 최수빈 작가와 핑크비지니스라는 사운드 팀의 팀원이자 기존에 서킷 밴딩 수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현남 작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순서는 이렇다. 우선 다마레민 만들기의 기초가 되는 다마고치의 역사와 서킷 밴딩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다음 강사가 미리 만들어온 다마레민의 작동과 연주를 시연했다. 현남 작가의 다마레민은 다마고치에서 나는 소리 4개의 높낮이와 속도를 조정해서 사운드 소스를 만들고, 여기에 8bit 효과를 더한 뒤 7개의 버튼으로 사운드 소스를 다양하게 조합해서 연주를 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전 신청을 통해 모인 참가자들이 부품 키트를 이용해 다마레민을 직접 만들고 작동과 연주가 가능한지 실험해보는 실습시간을 가졌다. 한 번 모인 자리에서 이 모든 과정을 소화해야 했고, 전자회로나 서킷 밴딩을 낯설어하는 참가자들도 다수 있었기에 모두가 완벽한 다마레민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마고치 자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들이 모였기에 워크숍 내내 의욕적인 작업이 이어졌다.
 
* 서킷 밴딩(Circuit Bending): 기성 전자제품의 전자장치 회로를 변형하거나 해체하여 새로운 악기나 도구로 바꾸는 것. 장난감이나 라디오를 이용해 서킷 밴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의도하지 않은 발견을 목적으로 전자제품의 접촉 이상이 일으키는 기이한 기능들을 활용한다.
 
최수빈 작가는 애초에 『다마고치 매뉴얼』 출간기념회를 다마고치 오스치와 메스치를 결혼시키면서 결혼식의 허례허식을 꼬집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젝트로 기획했으나, 프로젝트 멤버의 변동 때문에 위와 같이 세부 계획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계획이 달라져서 얻은 성과가 있다면, 결과적으로 ‘매뉴얼’과 ‘독립 출판’이라는 전체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형식과 내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점이다. 서킷 밴딩, 테레민, 다마고치처럼 누군가에겐 생소할 수 있는 개념 혹은 물건을 설명하고, 다마레민을 직접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매뉴얼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매뉴얼이 연달아 제작되어서 부각되는 형식적 통일성과 실험의 지속성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마고치 매뉴얼』 출간과 이와 관련된 일련의 프로그램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능하며 디자인되는 문서들의 포맷’인 ‘매뉴얼’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히듯이 “매뉴얼은 대상이 우선해야 형식이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들”이다. 『다마고치 매뉴얼』은 매뉴얼이라는 포맷을 가지고 “형식을 제대로 갖추면서도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잃게 하는 실험”으로, 각 기종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시리즈로 제작됨에 따라 매뉴얼의 대상이 이동하고 매뉴얼의 위상도 변화한다. 오래된 기종의 다마고치 매뉴얼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물리적 대상을 잃게 되지만, 최신 기종 다마고치에 이르면 매뉴얼은 본래의 기능을 되찾기 때문이다. 대상과 형식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어느 한쪽의 부재에 따른 다른 한 쪽의 의미와 기능의 차이에 흥미를 느끼는 작가는 이후에도 매뉴얼이라는 포맷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언젠가 최수빈 작가가 발표할지도 모르는 다마고치 도감, 그리고 2016년에 다마고치 2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한정판 다마고치(다마고치 간 결혼과 유전자 계승 기능이 탑재되었다고 한다)의 매뉴얼이 한층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