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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문화예술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多컴 2016 선정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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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술〉 
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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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월 ~ 9월
각자의 걷기 공간 7곳과 구글 드라이브 공유 도크(온라인)

작품을 대표하거나 내용을 보이기 위하여 붙이는 이름을 ‘제목’이라 한다. 그러나 현대 예술 작품의 제목은 자신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내비추거나, 하다못해 비슷하게라도 짐작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제목이 작품 감상과 이해에 길잡이를 하면서 동시에 아주 많은 궁금증과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소액多컴 > 5월 공모에 선정된 강지윤 작가의 프로젝트는 후자에 해당한다. 필자로서는 < 걷기-술 >이라는 제목/단어/말/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찬찬히 훑어보고 난 지금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다단한 의도와 의미, 복잡한 과정, 그리고 다층적인 결과물을 생산했는지를 생각하며 작가가 택한 이 제목이 깨나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 걷기-술 >을 기획한 강지윤 작가는 오래 전부터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고 한다. 본디 협업이란 서로 다른 개인이 만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때로는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 자신이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등의 행위를 동반한다. 작가는 협업이 수반하는 이러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같이 그리고 같은 작업을 할 때 발생하는 현상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데, 프로젝트의 협업 방식을 변주하고 텍스트, 영상, 설치 등으로 기록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입체적으로 작업을 발전시켜왔다. < 걷기-술 >은 작가의 기존 작업과 같은 맥락에 있지만, 협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몸을 움직이고 글을 쓰는 것에 더 집중한 프로젝트이다. 즉,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서 참여자 각자의 기억과 감각들을 되살려보고 이를 기록하되 이 과정을 각자 그리고 함께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이제 앞서 필자가 고민했던 제목의 수수께끼가 간단히 풀려버렸다. < 걷기-술 >은 여러 사람이 같이 ‘걷기’와 ‘기술(記述)’을 수행하는 프로젝트로, 두 명사가 합쳐진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여자들이 같이 걷기와 기술을 수행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프로젝트의 진행 방식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걷기
강지윤 작가가 ‘걷기’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다른 참여자들에 앞서 강지윤 작가가 ‘걷기’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걷기 위한 방법을 정한다. 일상적이고 그래서 무의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걷기를 다분히 의식적인 협업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걷기-술의 바탕을 마련하는 셈이다. (작가는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의『걷기의 역사』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첫 번째 걷기-술 : 각자의 걷기
온라인으로 모집한 다수의 참여자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각자의 장소를 걸으면서 한날한시의 서로 다른 풍경을 기록한다. 날은 8월 31일 수요일 밤 11시부터 9월 1일 목요일 새벽 1시로 정해졌고, 이 때 7명이 각자 걸으면서 걷는 도중 떠오른 기억, 생각 등을 기록하거나 풍경을 묘사하는 등 각자의 글쓰기를 진행한다. 단 걷기/글쓰기는 모두가 동일한 목차를 따른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걷기
2. 온도와 습도
3. 익숙하거나 낯선
4.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평한
5. 지금이 아닌 시간
 
두 번째 걷기-술 : 모두의 걷기
각자의 걷기/글쓰기의 기록을 하나의 글로 완성한다. 참여자가 일제히 ‘각자의 걷기-술’을 9월 10일까지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한다. 9월 17일 토요일 저녁 8시부터 18일 일요일 새벽 2시까지라고 못 박힌 시한 안에 기존 7개의 걷기-술을 각자가 자유롭게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단 한 편의 ‘모두의 걷기-술’로 변환한다. 단 ‘모두의 걷기-술’ 역시 ‘각자의 걷기-술’에서 따른 목차를 따른다. 완성된 글은 책으로 제작되는데, 『< 걷기-술 > 가이드』,『각자의 걷기-술』, 『모두의 걷기-술』 세 권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책은 참여자에게 전달되고, 독립서점에 입고된다.
 
작가의 말을 빌려 설명하자면, < 걷기-술 >이라는 프로젝트, 특히 “< 모두의 걷기-술 >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의견과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대한 글쓰기 실험”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곱 명은 자신의 걸음을 따라 생각했지만, 두 시간 동안 그들 모두 동일한 규칙에 따라 그 생각을 기록했다. 기록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조각나고, 버려지고, 선택되고, 접붙이어 한 문장 한 문장 저작자를 특정할 수 없는 하나로 재탄생했다. 프로젝트의 실행 과정에서 나와 타인, 개인과 무리,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분명했던 사실들이 모호해졌다. 따라서 < 걷기-술 >은 여럿이 모여 걷기와 쓰기를 함께하는 프로젝트이지만, 단순히 함께 만든 무언가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닌 그 과정 자체를 살피고 경험하고 감각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앞서 작가의 기존 작업을 설명하며 사용했던 ‘입체적’이라는 표현을 이제와 달리 이해해보자면, 곧 겹침/반복/덧붙임/재구성 따위의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는 이 모든 것이 동시에 한데 붙어 있는 어떤 과정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강지윤 작가가 < 걷기-술 >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 관찰자, 조정자, 매개자, 편집자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로젝트를 지켜보았던 누군가 혹은 ‘따로 또 같이’ 이야기를 전하는 세 권의-사실, 세 권이자 한 권인-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여러 단계와 층위의 감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어떤 낯선 이미지를 눈으로 보면 이어오던 생각에서 새로운 생각이 분할되어 시작된다. 생각의 분할은 낯선 길을 택했을 때 가속도가 붙는다.”
『모두의 걷기-술』, 4쪽에서 인용.
 
< 걷기-술 >이 담고 있는 다소 낯선 방식의 걷기와 쓰기, 이미지와 텍스트를 당신도 경험하고 싶다면, 주변 독립서점을 수소문하여 그 페이지를 직접 넘겨보길 권한다.


* 사진: < 각자의 걷기-술 >의 참여자들이 같은 시간 각자의 공간을 걸으며 보내온 사진. 강지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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